김대건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19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관 완성!!

예천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기념관'이 완성되었습니다. 지난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 선포되며 우리 성당이 전대사 수여 순례 성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에 본당 신부님께서 성 김대건 신부님의 홍보관을 만들어 보라고 요청 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을 통해 순교영성을 묵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금, 나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제작 의도와 기념관 제안서를 보시고 신부님께서 기꺼이 지금의 공간을 제공해주셔서 전체를 표현하며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념관을 만들어 보자며 내민 손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잡아 주시며 작년 11월 초부터 모든 제작 과정을 이끌어 가신 금손 전례 꽃꽂이 장로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탁월한 맥가이버 ..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7. 미리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의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던 곳으로 현재도 김대건 신부의 가묘와 기념경당이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에게 부제품을 주었고 함께 중국 땅을 여행했던 조선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유해가 그의 유언에 따라 김대건 신부 묘소 옆에 묻혔고,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와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운반해 온 고 이민식의 묘소가 단장되어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6. 새남터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새남터는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 되었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체포되어 9월 16일 향년 25세에 효수형으로 처형된 곳이다. 1801년부터 1866년까지 10명의 프랑스인 사제와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이곳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 들의 순교지'라 한다면 새남터는 '사제들의 순교지'라 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2018년 9월에 선포된 서울 순례길 3코스 '일치의 길'에 포함되어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5. 나바위 성지

제주 용수포구에 표착한 김대건 신부 일행은 부서진 배를 수리하여 다시 한양을 향해 북상 했으나 도저히 한양까지 갈 수가 없게되자 전라북도 익산의 황산포 나바위 화산에 도착하여 최초로 내륙 땅에 오르게 된다. 현재 이곳에는 고딕과 한옥이 가미된 형태로 건축되어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나바위 성당이 있고, 경내에 작은 박물관과 치유의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4. 제주 용수 성지

제주 용수성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등 13명의 일행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바다로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반파된 배로 9월 28일에 표착한 곳이다. 2006년 11월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곳 성지에는 고증을 거쳐 복원한 라파엘호와 김대건 신부가 간직했던 기적의 성모상본의 성모상이 전시되어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3. 은이 성지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의 은이 공소는 김대건 신부가 1863년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신학생 후보로 선발된 곳이며, 첫 사목지로 한국인 신부가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기 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봉헌한 곳이기도 하다. 오랜시간 공장과 잡초만이 무성한 텃밭으로 방치되었다가 1996년부터 성지 개발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이 철거되기 전 모습으로 복원한 '김가항 성당'과 김대건 기념관, 세례터 등이 조성되어 김대건 신부의 탄생과 성장, 세례성사와 신학생 선발, 사제 수품, 사목 활동, 순교에 이르는 생애 전반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는 성지가 되었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2. 골배마실

'골배마실'은 첩첩산중에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뱀마을, '배마실'에 골짜기 안에 있어 '골배마실'이라고 불려졌다.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교우촌으로 박해를 피해 정착한 곳이다. 이곳에서 소년 김대건은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성사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지냈다. 김대건 신부가 성장한 집터에는 성인 동상과 야외제대 등이 조성되어 있으나, 현재 성지가 골프장안에 위치한 관계로 평소에는 보존을 위해 문을 잠가 놓아 근처의 은이 성지로 문의해야 한다.

김대건신부님의 발자취 1. 솔뫼 성지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신리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로 김대건 신부가 일곱 살 되던 1872년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로 피신하기 이전까지 살았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가 영세한 이후 교우촌이 형성돼 이어져 오고 있다. 1976년 본격적인 성지 조성작업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탑, 생가와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김대건 신부의 성덕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2014년 8월 15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청년들과 만남을 가졌고, 2014년 9월 25일에는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이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529호로 지정되었다.

라파엘호 제작

1845년 8월 김대건 부제님은 중국 상해 인근 금가항(金家港)에서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제로 서품되셨습니다. 같은 해인 1845년 8월 31일에 '라파엘호'를 타고 페레올 주교님와 다블뤼 신부님, 그리고 조선인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나 9월 28일 제주도 용수리포구(용수성지)에 표착하였다가 10월 12일에 상해를 떠난지 40여일 만에 강경 황산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때 타고오신 '라파엘호'를 여러 형제자매님의 아이디어와 도움으로 저희 성당안 김대건신부님 기념관에 1차 생가터에 이어서, 2차 주제로 서품을 받고 조선에서 사목을 하시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타고 오신 '라파엘호'를 제작해 보았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신앙에서 멀어진 이때 옛날 신앙의 선조들께서 어떤 마..